먹은 것들

[자취요리] 고등어김치조림

치피킨자 2021. 1. 21. 23:34

혼자 있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.

먹고 싶은 것도 생각나지 않고 식욕도 없는 것이,
배가 너무 고파서 뭘 먹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의욕이 없는 그런 날.

배민을 켜봐도 땡기는 것도 없고 유일한 장점이라고는 잘 먹는 것뿐이어서 괜스레 우울해지는데,

그럴 때면 항상 초등학교 때까지 질리도록 먹었던 엄마가 해준 밥이 떠오른다.

 

 

 

 



어렸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와서야 생각해보면 집에 돈이 없었던 게 분명하다.

배달음식도 몇 달에 한번 이벤트 처럼 시켜 먹고 소고기 같은 것도 먹은 기억이 거의 없다.

괜히 사치 부리는 것 같아 꺼려졌던 배스킨라빈스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 가봤다.

아빠 담배 끊은 돈으로 천원 이천 원 모아 경주로 가족여행을 갔던 기억도 난다.

 

엄마 아빠한테는 힘든 시기였을 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소중한 기억이다. 

암튼,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 형편이 나아져서 순두부찌개에 바지락 대신 소고기가 듬뿍 들어갈 즈음엔 엄마가 바빠져서 어렸을 때의 그 밥을 먹을 수 없었다.

지금은 해달라고 해도 엄마의 미각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 맛이 안 난다. (내 입맛이 변한 걸 수도 있다)

엄마랑 오빠랑 앉아서 커다란 파래 덩어리(?)를 한 올 한 올 뜯던 그 추억이 그리운 건지, 소금과 참기름 향이 가득했던 엄마의 파래 볶음 맛이 그리운 건지는 모르겠다.

확실한 건, 항상 내 손을 떠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.


그렇게 고소한 추억과 함께 떠올린 메뉴가 고등어 김치조림이다.

가끔 엄마가 해주면 밥 두 그릇 뚝딱했던 내 최애 메뉴 중 하나였다.

 

 

 

 

 

 

자취하면 제일 못 먹는 게 과일이랑 생선인 것 같다.

특히 생선은 요리하기도 왠지 어려워 보이고 굽기라도 하면 집에서 냄새가 안 빠지는 탓에 먹기가 꺼려진다.

그래서 혼자 산 지는 1년이 훌쩍 넘었는데 생선 요리는 이번이 처음이다.

마트에서 장을 보면 생선 쪽으로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데, 인터넷으로 보니까 어렸을 때 먹었던 고등어김치조림이 너무 먹고 싶어 져서 충동구매해버렸다.

물론 그때의 맛은 절대 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. 


어렸을 때의 추억의 맛은 마치 처음으로 기억에 남은 복숭아 맛 같아서, 아무리 이 것 저 것 시도해 보아도 그 때의 맛은 나지 않는 법이다. 

그래도 추억의 주인장인 엄마의 도움을 받아 도전해 본다.

 

 

고등어 김치조림 

 

 

사진으로 보면 물이 많아 보이는데, 실제로도 많다. 

 

이후에 조금  더 졸여서 사진보단 물이 줄어들었다. 

 

쌀뜨물 받아서 김치 넣구 그 위에 고등어 넣고 다시 김치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된다.

무를 넣으면 더 맛있겠지만 없어서 총각김치를 넣었다.

비린내 제거한다고 소주를 넣어봤는데 효과가 없는 건지, 적었던 건지, 제거된 건데 모르는 건지, 나한테는 조금 비리긴 했다.

 

 

식탁에 올라온 고등어김치조림 



사진으로 찍으니 그럴싸하다. 

물이 낭랑한 게 찜이 아니라 찌개 같지만 기분 탓이다. 

 

물론 추억의 그 맛을 재현하지는 못했지만 

생선 요리를 했다는 성취감, 그리고 집에서 이제는 생선을 먹을 수 있다는 만족감이 새로운 추억을 쌓아 주었다. 

 

 

저걸로 세끼 + a 알차게 해결!